지나간 슬픔보다야 현실의 만족감에.. ... - 2007년 11월 11일 (일) 여섯째날 1 만들래이.
어김없이 5시쯤 기상.. 오늘은 그냥 방에서 준비하고 같이 움직이기로 결정(내가 밤새 몸살로 좀 끙끙대는 바람에.. 아침 산책 금지.) 아침이 7시부터라니, 내외가 공부하자. 만들래이 했다.
만들래이, 양곤에서 북쪽으로 695Km, 미얀마왕조의 마지막 수도. 따웅우왕조의 말기 상황 수습. 영국, 프랑스의 연합과 공격 속에 역대 왕조를 잇는 새로운 왕이라 선언하고 알라웅퍼야(Alaungpaya)왕이 통일왕국을 재건한다. 1752년 꽁바옹왕조 수립. 18세기 중엽. 태국 공격. 초토화 시켜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게 했다. (이후로 태국과의 관계, 한일관계다. 미아한테도 아부하느냐고.. 나 여기 오기 전에 아유타야 유적 보고 왔는데.. 바간에 비하면 쨉도 안된다고 했다. 너 아부지? 하고 바로 알아 차리드만. 어라? 정말인데.. 흐흐.)
(3일동안 만들래이를 헤메면서? 체크하던 지도. 물론 잉와 등
외곽지도는 론니에서...)
여기서 잠깐, 태국과의 관계, 전륜성왕 개념의 인근 국가이긴 하지만 미얀마입장에서는 하나의 왕의 개념으로다가 태국을 왕무시한다. 하긴 문화나 역사로 보면 나도 미얀마 편이다. 1287년 버강왕조는 불안한 국내 정세를 만회하기 위해 수코타이(치앙마이 근처)를 침략하고. 1356년 몽고 이후 다시 세운 왕조는 아유타야 남부지역 침략한다.(버간왕국의 약세를 틈나 야유타야가 미얀마 남쪽을 슬쩍 챙긴 것에 대한 괘씸죄다) 1563년 버잉나웅왕은 그 유명한 코끼리부대를 앞세워 치앙마이와 아유타야를 침략하고.. 1766년 신뷰신왕은 아유타야를 멸망시키는데, 내가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 바대로 그 지역의 불상이란 불상은 “니들처럼 무식한 것들이 웬 부처님?” 하고는 모든 불상의 목을 쳐 버렸다.. (흐흐 그 와중에 한 두개 살아남은 부처도 있더만....) 그러니.. 앙숙이 될 수 밖에.. 2002년 미얀마는 보라는 듯이.. 국경 인근지역에 버잉나웅 왕 동상을 제막하고 약 올린다. 가만 있을소냐? 태국도 2003년 나레쑤언 태국왕 동상을 보란 듯이 세워 버린다.
그 뿐이랴, 현대사에서도 1969년 실각한 우 누가 순례목적용 비자로 태국을 방문한 다음.. 태국정부의 비호아래 미얀마를 왕창 흉봤더니, 그래? 하고는 엉뚱한 데로 불꽃이 튀어 국내에 있는 반체제인사들을 아예 숙청했단다. 아무튼, 이 둘은, 언젠가 국제회의 중에는 태국대표가 “미얀마처럼 불안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것이 슬프다” 했더니, 미얀마대표는 “우린 매춘으로 먹고사는 나라와는 상대 안한다” 했다는.. 하는 짓이 딱 누구와 비슷해서리..
그런데 경제라는 것이 묘하다. 이런 앙숙이면서도 마지막으로 아세안회원국으로 미얀마를 가입시킨 것도 태국총리인 딱신의 노력 결과니(2006년 아세안 의장직을 미얀마가 포기한 것은 서구의 미얀마의 경제제재와 아세안까지 영향을 미친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지?), 그건 아마 미얀마의 천연가스등의 에너지를 싼 값에 수입해 쓰는 태국으로서는 미워할 수만 없는 입장이겠지.. 뭐. 아무튼 그 지랄 같은 경제제재에 중국과 태국만 살 판 났다.
1782년 보도퍼야Bawdawpaya의 화려한 재기에 힘입은 후, 1819년 바지도 Baguidaw왕은 그 때까지 중앙정부에 까불던 라카인(사실 미얀마부속령이라고는 하지만, 이 지역은 거의 독립동네였다. 산맥도 산맥이지만, 동네가 워낙 인도에 가까워. 버마족하고는 안 놀았다는... 그런데 이 시기에 비로소 동쪽산맥 넘어 라카인 지역을 점령했다. 그래서 므락 우 지역 등 이 지역은 사실 인도의 영향이 더 크다.
그러나 왕조에 정복에 불만인 이 지역사람들이 아삼으로 불법 이주하면서 영국과 미얀마의 갈등이 시작된다. 사람들의 도망자 추적을 위해 영국령인 아삼으로 들어갔고, 1824년 이에 경사난 영국(틈만 노리고 있는데 덜컥 미끼를 물었으니..), 2년간 전쟁에서 명장 마하 반둘라의 활약에도 불구, 미얀마는 패배하고 영국과 얀다보 조약(영국에게 라카인과 뜨닌라리를 할양...하고 잉와에 영국군이 주둔하는 것을 허용)을 체결하는 굴욕을 맛본다. (영국입장에서 보면 아주 신났다. 가뜩이나 인도차이나반도를 프랑스에게 선점 당하자, 인도까지 불안한 차에 중간에 미얀마로 커텐효과를 가져야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영국이 인도차이나반도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의 일부일 뿐이고.. 지속적으로 식민지, 보호령 정책을 확대하게 된다)
1851년 양곤의 영주는 영국과의 불균형 무역이 늘어나자. 밀수 등을 단속조치 했으나 도리어 영국총독의 개입하여 엉뚱하게.. 손해배상에다가 영주까지 교체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중국에게 한 짓과 똑같다..) 가뜩이나 기분 나빠 죽겠는데, 1852년 영국장교들이 말을 탄 채, 청사안에 들어가서, 사과해라.. 했더니 미쳤냐 하고 그냥 배로 돌아갔단다. 자존심 상한 미얀마.. 이 배에다 대고 대포 한 대 쏜 것 뿐인데.. 도리어 당했다. 이걸로 다시 3개항구를 강제 개항 시키면서 모든 바닷길을 영국이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버고를 영국령으로 하여 미얀마 중하부를 시작으로 식민지화에 성공한다.
1857년 민돈왕은 만들래이로 수도를 옮기면서, 국가개건과 1872년 흔들리는 국세를 마지막으로 제 5차 불교 결집대회를 만들래이에서 개최하는 등 왕국의 모습 유지하려 했으며.. (이때부터 슬슬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했는지.. ) 꽁바옹왕조의 마지막 왕 띠보Thibaw 는 프랑스에 사절단을 보내 1885년 20개항의 통상조약 제안서를 받아 왔으나, 별 짓 다한다고 무시한 영국의 정책에 따라 실패하고.. 도리어 이참에 아예 혼내주겠다는 영국의 전면전으로 결국 전쟁개시 11일만에 정복당한다. 이렇게 1824년, 1852년, 1885년 영국과의 세차레 전쟁에서 패한 꽁바옹왕조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함으로써 미얀마 그 화려한 왕조역사는 추억속으로.. (영국 이 놈들.. 그런데 자존심 상하게. 미얀마를 독립식민지가 아닌,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킴으로써 다시 열 받게 했다는.....) 이 모든 것을 지켜 본 만들래이다. 위에 열거한 왕들의 초상화를 왕궁 부속 박물관에서 만났는데 알고 가서 그런가. 왠지 우리 고종형님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아무튼 이 쓸쓸한 왕조의 년대기.. 역시 론니에서 퍼 온다. 년대기를 굳이 훔쳐오는 것은 각 유적지를 돌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은 알겠지, 뭐.
Alaugpaya 1752-60
Naungdawgyi 1760-63
Hsinbushin 1763-76
Singu Min 1776-82
Bodawpaya 1782-1819
Bagyidaw 1819-37
Tharawaddy Min 1837-46
Pagan Min 1846-53
Mindon Min 1853-78
Thibaw Min 1878-85
공부 많이 했다. 배 고프지. 밥 먹자.. 7시에 식당 고. 일층에 작은 식당. 테이블이 꽉 찼다. 창가에 마침 2인용 자리가 비워있어. 그리로 앉다. 토스트는 바간 보다 훨씬 맛있었으나, 다른 메뉴는 정성이 문제지.. 내용은 미얀마 전역이 같다는... 종업원들이 다들 어려서인지. 왠지 정이 안갔다는..(다 민민 때문이다..) 우린 동시대인이 좋다.. 년배가 비슷하다는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정서도 일치할 수 있기에...
(로얄의 아침. 과일은 제일 부실했고. 토스트는 무척 맛있었으며. 쥬스는 그냥 탱탱..)
8시 로비로 내려오니 미아와 슈웨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호들갑 인사를 끝내고 밖에 나가 둘이 블루택시 하루를 흥정한다. (이 친구들 한국에서의 모습과 달리 물건 값 깎는 모습은 딱 우리 아줌마네...하긴 한국에서는 내가 다 했다.. 흐흐.)
두 사람의 배려엔 미안하지만, 블루택시, 아주 짧은 거리 이동은 권할만 하다. 싸니까. 또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헌데, 하루 대절은 피했음 싶다. 이게 아주 썩을대로 썩은 데다가, 방식이 매연을 그대로 짐칸에 올라 타 있는 손님들이 그대로 맡아야 하는 방식이다. 하루를 탔더니.. 내 여린 비강막이 그냥 나갔는데.. 꾸욱 참고.. 내내 탔더니.. 코감기가 시작 되더만. 서울에 와서도 일주일 정도를 점막에서 혈흔이 보였다. 더구나 만들래이는 정말 매연 심하다. 코가 아프다. 사람들 많으면 그냥 일반 택시를 대절하는 것이 정신건강과 비강보호에 도움이 되지 싶다. (너무 돈 아끼지 마라. 여행가서 밥 굶고 어쩌고 하면서 돈 아낀 자랑.. 그거 웃긴다. 갈 때 비행기값 생각해서.. 국내여행과 달리 충분히 보는 것이 더 남는 장사다.. 고급택시는 시간당 얼마해서 하루를 대절하기도 하는데.... 한 3-40$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
8시 출발.. 제조마켓 근처에서 스톱. 벌써? 했더니 과일사자다. 우와.. 사실 동남아 여행의 매력은 열대과일 섭렵하기인데. 미얀마에서는 과일가게를 안 다닌 것 같다. 워낙 아침에 꺽소리 나게 과일을 때리는 바람에.. 오늘은 아마나푸라, 잉와, 사가잉 등 원거리니, 중간 중간 과일 섭취가 도움이 되겠지. 이 아줌마(아니, 아가씨들) 또 돈 같고 실강이. 이번엔 내가 졌다. 이건 어젯밤 약속과는 예외조항이란다. 그래라 뭐. 니들은 안 먹니.. 쩝!
(이리 보면 꽤 한적해 보이지만.. 매우 정신없던 만들래이 도로. 매연 .. 매연..)
(제주감귤만큼 맛있던... )
그리곤 바로 다시 선다. 기념품 가게.. 우산가게. 잠시 구경.. 금딱지 만드는 거 보여주는. 공방.. 하루종일 손님만 오면 두드려야 하는 인생도 고달프겠다 싶고.. 넓은 상에서 포장하고 있는 아가씨들도 예쁘고.. 엔틱티 나는 기념품은 이미 바간에서 샀기에 슬슬.. 움직일까 하는데.. 금딱지 셋트가 눈에 들어온다. 1세트에 10장짜리 금딱지 1,000ks에 구입. 그런데 오늘 내 가이드 맡은 두 명의 여자들이 더 나올 생각을 안 하더라는.. (나중에 보니, 나 밖에 나오는 동안, 내 선물로 작은 부처님 입상 나무조각 하나 샀더만.. )
(손님 들어오면 포즈잡기.. 이 짓도 할 짓 아니다만.. )
(두드리고 두드려서.. 금을 거의 날라가게 얇게 펴서 포장하면...)
(나같은 신도도 사다가 부처님께 붙여 드리는.. 금딱지 세트 포장...)
(이번 여행중에 제일 망설인 것은 부처님 조각상이 아니였나 싶다. 그런데 그걸 집에다 두면 왠지 마음의 부처가 아니라 형상의 부처를 모시는 것 같아.. 결국은 선물로 하나 받았지만... 원래 부처는 마음속에 모시느리라..)
(양산선물이 최고라 던데.. 사갔으면 망신 당할뻔 했다.. 지우산 참 화려하지?)
(사진 정리하다 보니 나왔길래.. 이거 태환권이라는 것이다. 미국달러와 똑같은 기능으로 사용되는데.. 강제 환전의 의무는 없어졌다. 양곤에서 뭔 사정이 있어.. 이걸 100$ 바꿨는데.. 쓰는데 불편많았다... 이 사람들.. 지들은 헌 돈 주면서.. 새 돈 아니면 도대체가 통용하기 어려워서.. 특히 민간업자들은 환율이 다르기때문에 절대로 안 받을려고 노력한다. 입장료 등 정부요금 낼때는 두말없이 받는데.. 그것도 흠집이 있으면. 곤란.. 절대로 바꾸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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